남자라면 한 번쯤 학창 시절, 아니 학창 시절이 아니라도 일생에 한 번쯤은 무협에 푹 빠져 지냈던 시기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80~90년대 홍콩 무협 영화를 어린 시절 비디오로 접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이제는 중년에 들어선 나이가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그런 나이 때의 사람이다.

천녀유혼 왕조현을 흠모했던. 이제는 아재가 돼버린 세대다. 그리고 이제 고인이 되어버린 장국영 형님도..ㅜㅜ

임청하 누님도 최애 배우중 하나였고, 무술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많은 이름을 날렸던 이연걸의 팬이기도 했다. 연결형님은 이제 병마에 시달리시고 ㅜㅡㅜ

아무튼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형들 누나들 어깨너머로 접했던 홍콩 영화를 마음속 추억으로 담고 있는 세대랄까.

나와 같은 세대라면 다들 알만한 김용 선생의 영웅문 3부작. 무협 소설의 최고봉이라 여기며 몇 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현재도 영웅문은 최고의 무협소설 중 하나로 여겨지지 않을까… 난 이제 찾기 힘든 아래 이미지의 고려원에서 발매한 영웅문을 읽었던 세대다. 이 영웅문을 집필한 김용의 소오강호가 영화 버전으론 위 포스터의 동방불패다.

중국의 모든 무협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김용 선생의 영웅문 1부 사조영웅전.

오늘 이야기할 것은 만화에 대한 것인데 추억에 잠겨 영화와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한 만화 풍운(風雲)은 내가 생각하는 무협 만화의 최고봉이다.(옛날 사람 기준)

김용 선생의 영웅문이 소설과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그 만화버전이 나는 풍운이라고 생각한다. 대만 만화로 마영성이라는 작가에 의해 그려졌다.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건 나한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한국사람의 대부분은 이 풍운 만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영화도 나오긴 했으나 만화로 치면 극 초반의 내용이기도 하고 크게 흥행하지도 않은 거 같다.

만화는 더더군다나 권수가 꽤 되는데(최종 100권이 넘었으니) 정식 수입은 80여 권가량이고 그 뒤로는 발매되지 않았으니 더더욱 희소한 만화가 아닐까 한다.

내가 이 만화를 높게 평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일단 만화의 퀄리티가 굉장하고 수많은 무공을 그림으로 정말 잘 표현해 내었다. 1부의 웅패가 펼치는 삼분 신지는 적이 펼치는 무공이지만 정말 멋지다.  

풍운에서 은둔 신화로 불리는 천검 무명의 만검귀종은 이름도 멋지거니와 수많은 검이 일심 합일되어 공격을 펼친다는 것에서 정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 만화도 김용의 영향을 받았는지 향룡십팔장에 대한 내용도 살짝 나온다. 원래는 장법인데 여기서는 향룡십팔퇴법으로 나온다.

두 번째로 무협 마니아라면 한 번쯤 좋아하거나 들어봤을 만한 캐릭터들이 정말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보경운과 섭풍이지만 특색 있는 주변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고 해야겠다. 검성, 검황, 검신, 검마, 무명, 신의 등등 정말 수많은 영웅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름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다들 나름의 스토리를 가지고 등장한다.

영웅검을 다루는 절대종사 무명.

스토리도 나쁘지 않다. 어릴 적 부모를 모두 잃고 사랑하는 이조차 잃게 되며 믿을 거라곤 무공밖에 없지만 자신의 신념과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비운의 캐릭터 보경운, 그리고 사형 보경운과 다르게 정도 많고 정의를 중요시하지만 상황에 따라 마도와 정도를 넘나드는 바람의 신 섭풍. 극히 대비되는 두 명의 주인공이 어쩔 때는 힘을 합치고 어쩔 때는 서로 맞서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더불어 주인공을 둘러싼 메인 스토리를 중심으로 줄기처럼 뻗어나가는 주변인들의 스토리도 짜임새 있고 재미있다.

2인자의 윤회를 겪게 되는 운명을 지닌 검성

풍운의 스토리는 너무 방대하여 몇 문장으로 축약하기 어렵다. 주인공은 풍운이지만 1부 이후부터는 다른 캐릭터가 메인이 된다던가 그들의 자식들이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던가 하면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깔끔하게 주인공 스토리만 진행했어도 되는데 인기는 있고 하니 계속 스토리를 이어나가기 위한 억지 설정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신화의 생물이 현실에 존재하고 그것을 죽여서 보옥을 먹으면 무공이 급증하고 장생한다 던가.. 뭐 그런 너무 SF로 가버리는 스토리도 있다. 그리고 무공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이전에 등장한 절세고수들은 나중에 가면 다 쩌리들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내가 풍운을 높게 평가하는 마지막 이유는 이 만화는 정말 무협 만화이다. 이 뜻이 뭐냐면 다른 무협만화나 무협지들을 보면 항상 나오는 스토리. 주인공이 어떤 인연을 얻어 무공이 급증하고 절세미녀를 구해서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야한 내용 막 나오고) 뭐 그런 스토리가 전혀 없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 안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선도 잘 드러나고 오해와 질투 속에서 무협만화의 본질을 잃지 않고 무공을 정진하는 캐릭터도 나오고 뭐 그렇다.

십강무자 무무적의 아들 소무. 아버지의 기대는 저버렸지만 운명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어쨋든 추억의 무협세대라면 좋아할 요소들을 정말 많이 골고루 갖추고 있는 만화임에 틀림없다. 네가 좋아하는게 뭔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그런느낌. 하지만 나도 이 만화가 정식 수입이 중간에 끊겨서 당시에 완결까지 못봤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찮게 자주 이용하던 카카오페이지에서 풍운을 입력해보니 허걱? 언제 수입되었는지 책으로는 발간을 안했지만 디지털로 완결까지 볼 수있게 연재를 하고 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결제하고 첫편부터 완결까지 정주행 했다. 더구나 이전에 봤던 만화책과 다르게 풀컬러로 다시 리마스터링(?) 된 버전이라 더욱 잼있게 볼 수 있었다. 약간 아쉬운점은 번역이 좀 이상하달까? 이전에 봤던 책의 무공이름 번역과 카카오페이지의 번역이 좀 틀려서 좀 집중하기 힘든점도 있었다.(번역가가 아마도 무협을 잘 모르는듯.)

아무튼 카카오 페이지 덕분에(홍보는 아닙니다.) 미완의 추억으로 남을뻔 했던 작품을 완결까지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완결부분은 대사없이 진행되는데 그게 참 멋있고 괜찮았다. 이렇게 떠나는게 아쉽지만 강제로 늘이다가 망작이 되는 명작들이 너무 많아서 이정도로 끝내는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가끔 생각한다. 요즘 9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사람들도 이 만화 보면 잼있을까? 세대가 너무 틀려지기도 했고 요즘은 게임같은 만화가 유행이니깐. 집중해서 못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임엔 틀림없다.

안타까운 운명을 맞게되는 섭풍의 아들 역풍. 고난을 딪고 멋진 캐릭터로 성장하는 신봉
기린비 장착 불주먹 보경운
무공은 초식과 육체적 강함이 다가 아니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명

END.